제대로 붙은 이명박, 박근혜…제대로 밀린 이명박

[정치파일]제대로 붙은 이명박, 박근혜…제대로 밀린 이명박

2007-05-30 11:47:21

“이명박이 기 싸움에서 제대로 졌다.” 최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 간 갈등과 그 결과를 두고 한나라당 내 주요 당직자들이 한 말이다. 경선방식에 대한 공방에 이어 후보검증론을 둘러싼 대립과 반목, 여기에 4·25 재보선 참패에 따른 지도부 교체론, 그리고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의 경선룰 중재안에 대한 수용까지 숨 가쁘게 진행된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 간 싸움에서 이 전 시장이 밀렸다는 의미다. 특히 지난해 추석을 전후로 고착화된 대선후보 지지도 1위를 그대로 현상 유지시켜 이른바 ‘대세론’으로 대권을 접수한다는 이 전 시장 캠프의 전략이 ‘지나친 몸 사림’과 ‘승부수 상실’로 이어져 계속해서 박 전 대표에게 밀리고 있다는 당 내 분석은 앞으로 전개될 한나라당의 상황과 대선을 예측할 수 있는 중요한 복선이 되고 있다.

강재섭 중재안을 수용한 이명박
지난 5월 14일 전격적으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 전 시장은 강 대표가 정계은퇴라는 배수진을 치고 내놓은 경선방식 중재안을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했다. 전날까지 “양보를 할 견해는 없느냐”는 기자들의 질문에 “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 있나”라고 말했던 이 전 시장이다. 이 전 시장의 ‘결심’은 정두언 의원을 비롯, 그의 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과 이재오 최고위원 등 핵심 측근들도 몰랐던 내용이다. 결국 이 전 시장의 중재안 수용으로 한나라당 내홍은 일단 가라앉았다. 이에 대해 이 전 시장 캠프 측은 “선거인단 추가 확대라는 실리와 박 전 대표 사람이었던 강 대표의 우군화, 그리고 통 큰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심어 준 계기가 됐다”고 자체 분석했다. 그러나 캠프 내 핵심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“현재의 판이 깨지는 것을 제일 우려하는 이 전 시장 의중을 안다면 이번 양보는 어느 정도 점쳐진 것”이라며 “앞으로도 갈등이 이어질 텐데 그 때마다 박 전 대표에게 양보를 해야 하느냐는 걱정도 있다”고 말했다. 그는 “아무리 현재의 판세가 우리 측에 유리하다 해도 계속해서 저 쪽(박 전 대표 측)에 밀리면 앞날을 장담 못 한다”고 밝혔다.

이에 대해 박 전 대표는 “강 대표 중재안의 1항과 2항이 그대로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우리가 또 한번 양보한 것”이라며 “원래 합의안 경선방식에서 또 다시 룰이 바뀌었는데 원칙이 계속해서 훼손되면 안 된다”고 입장을 밝혔다. 그러나 이는 언론을 의식한 형식상의 발언일 뿐 실제 박 전 대표 캠프는 웃고 있다. 박 전 대표 캠프 내에서는 중재안 3항의 무효라는 실리뿐만 아니라 ‘강단 있는 원칙론자로서의 이미지 재확인’에 큰 의의를 두고 있다. 캠프 관계자는 “내부에서는 ‘당이 와해된다 해도 박 전 대표가 그래도 밀고 나갈 것’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”며 “‘한번 해 볼 테면 해 봐라’는 박 전 대표의 배짱과 결단이 캠프를 더욱 결속시키는 효과도 낳았다”고 밝혔다.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 싸움에서 이 전 시장은 충돌을 두려워해 피했다면, 박 전 대표는 그대로 달렸기 때문에 기세 싸움에서 확연히 승부가 갈렸다는 얘기다.

“이명박 승부수를 던졌어야”
“박근혜에게 TK의 구 민정계 세력이 있다면, 이명박에게는 이재오가 있다” 한나라당 내 상황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당직자들의 분석이다. 한 당직자는 기자에게 “박 전 대표는 지난 사학법 투쟁에서 확실하게 보수층의 마음을 사로잡았고, 그 핵심은 TK의 구 민정계다”며 “조직과 자금 동원에서 막강한 이들이 박 전 대표의 가장 든든한 우군이라면, 이 전 시장의 가장 큰 자산은 바로 이재오라는 최고의 전투력을 갖춘 참모”라고 주장했다. 이 전 시장 캠프의 좌장격인 이재오 의원은 캠프 내에서 막강한 권한을 쥐고 조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. 운동권과 재야에서 쌓아온 이 의원의 경험은 정치권에서 강한 추진력으로 나타나고 있다.

문제는 지난 4·25 재보선에서의 한나라당의 참패와 그 결과로 이어진 ‘지도부 총사퇴론’에서 이 의원의 결단을 이 전 시장이 뒷받침해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있다. 이 의원의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이 의원은 ‘이번 기회에 한 판 붙어 당을 장악해야 한다’고 주장했다고 한다. 이 관계자는 기자에게 “둘로 나눌 수 없는 권력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 의원은 이번 기회에 박근혜 및 구 민정계와 진검승부를 벌여 당을 장악해야 한다며 이 전 시장의 결단을 촉구했다”고 밝혔다. 이어서 그는 “지난 97년 대선 당시 YS는 박철언과의 승부를 위해 거제도행을 택했고, YS의 결단력 있는 승부수에 박철언 계는 항복을 했고, 이는 YS의 당 장악으로 이어졌다”며 “이 전 시장도 동일한 방법을 썼다면 진정한 세 대결을 통해 당권파를 장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”고 말했다.

민심의 지지도에서 월등히 앞서고 있는 이 전 시장이 승부처에서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다면 계속되는 한나라당의 내분에 차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던 유권자들이 이 전 시장의 결단과 강력한 리더십을 지지했을 것이고, 이를 명분으로 당 내 세력은 이 전 시장 쪽으로 규합될 수 있었다는 얘기다. 즉 ‘진검승부’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는데, 그럴 경우 민심을 등에 업은 이 전 시장이 박 전 대표를 비롯한 당권파에게 질 수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. 이는 이 전 시장의 대선후보 직행을 뜻하기도 한다. 그렇게 되면 지금과 같은 당 내 혼란도 자연스럽게 없어지게 된다.

뿐만 아니라 이 전 시장의 최대 약점인 조직의 충성도도 담보할 수 있었다. 이 전 시장의 승부수에 동참한다는 것은 아직도 눈치를 살피고 있는 캠프 내 의원들의 ‘복종’을 뜻하기 때문이다. 강력한 지도력을 요구하는 오늘날 민심의 근원과 당 내 세력구도를 정확히 읽은 이 의원은 권력의 속성을 바탕으로 권력투쟁의 필요성을 절감했고, 이를 이 전 시장에게 강력하게 요구했으나 이 전 시장이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이다.
이는 이 전 시장을 지지하는 의원들과 그 조직적 성격에 기인한다. 박 전 대표를 지지하는 의원들은 자신들의 확고한 지역 기반을 가지고 있다. 반면 이 전 시장 캠프 내 의원들은 대부분이 초재선 의원들로 이들은 자신들의 지역 기반에 상당한 우려를 갖고 있다. 때문에 이들은 내년 4월에 있을 18대 총선의 공천을 최대 목표로 이 전 시장을 지지하는 것이며, 이는 이 전 시장의 높은 지지율이 어느 정도 담보하고 있다. 이 전 시장 캠프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“정치적 생존에 따른 이해관계로 얽힌 조직 상황을 알고 있는 이 전 시장으로서는 대선의 운명을 건 승부수를 과감히 던질 수가 없었을 것”이라며 “그로서는 현재의 판을 흔드는 그 어떤 변수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”고 말했다.

험난한 과정이 남아있다
현재의 판이 변동되는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는 이 전 시장의 양보가 한나라당의 분열을 일시적으로는 봉합했지만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암초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. 강재섭 중재안을 두고 양 진영 간의 갈등 조율에 주력했던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은 이 전 시장의 ‘양보’와 박 전 대표의 ‘수용’으로 갈등이 봉합된 지난 5월 16일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“아직 넘어야 할 산의 중간도 못 갔다”며 “합의는 됐지만 양 진영 간 앙금은 가시지 않았다”고 말했다.

박 전 대표는 이 전 시장 검증 문제가 논의됐을 때 “어떻게 이런 분이 대통령 후보로 나설 수 있느냐”고 말했다고 전해진다. 박 전 대표 캠프 관계자는 “선거법 위반 전력 등 도덕적 흠이 너무 많은 이 전 시장에 대한 박 전 대표의 불신이 극에 달해 있다”고 말했다. 이러한 의식을 반영하듯 박 전 대표는 지난 5월 14일 “법을 어기고 부패한 사람이 앞서가는 나라는 선진국이 아니자 않느냐”고 주장했다. 특히 박 전 대표가 지난 5월 4일 염창동 당사에서 이 전 시장에게 “나보고 애 못 낳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느냐”며 따진 사례는 박 전 대표의 감정적 골이 깊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. 이러한 불신은 이 전 시장 쪽도 마찬가지다. 이 전 시장 캠프 관계자는 “후보검증론과 한반도대운하에 대한 비하 발언이 이미 도를 넘었다”며 “‘같은 당 후보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이 가능하느냐’며 이 전 시장이 큰 화를 낸 적도 있다”고 밝혔다. 이에 대해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이행봉 교수는 “대선후보 지지도 1,2위를 나란히 달리고 있는 양 측의 세가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해서 맞부딪힐 수밖에 없다”며 “결국 분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”고 전망했다.

지난 5월 21일 한나라당은 전국위원회에서 경선규모와 경선일정 등 경선규칙의 밑그림을 확정했다. 이 자리에서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이 ‘공정경선’과 ‘경선결과 승복’을 다짐하며 출발점에 나란히 서긴 했지만, 과연 두 주자가 갈등과 반목 없이 완주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당 내 절대적 의견이 회의적인 것이 사실이다. 특히 후보검증과 정책공약 검증, 그리고 여론조사 방식 등을 놓고 양 측은 큰 이견을 나타내고 있어 앞으로 이들의 갈등은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. 2007년 12월 19일에 치러지는 대선에서 가장 큰 변수는 범여권의 통합과 더불어 이른바 ‘빅2’의 관계 설정이다.

김기성 기자 (kisung0123@newsone.co.kr)

by 짱구0123 | 2007/05/30 18:14 | 정치시사 | 트랙백 | 덧글(0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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